103조 투자, 반도체위원회 신설, TSMC 협업 등 선제적 대응
![]() |
▲SK하이닉스가 개발한 HBM3E. 사진=SK하이닉스 |
[CWN 소미연 기자] SK하이닉스가 SK그룹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고강도 쇄신에 나설 만큼 내부 위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핵심 계열사로 그룹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 바로 SK하이닉스다. AI 시대 개막으로 수요가 폭증한 HBM 분야를 선점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뒷받침했고,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의 한 축을 맡아 살림을 도왔다. 전망도 밝다. 올해 2분기 기대 이상의 실적이 예상돼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반도체와 함께 성장동력으로 꼽혔던 배터리, 바이오 사업이 부진을 겪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대감은 숫자로 나타났다. 시가총액이 지난 10일 기준 173조9926억원으로 전년 대비 68조원 이상 늘었다. LG그룹과 현대차그룹 전체 시총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80개 대기업 집단 중 올 상반기 시총 2위에 올랐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반도체 업황 회복, HBM 호재를 타고 큰 폭으로 주가 상승한 SK하이닉스가 SK그룹 시총 증가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진행 중인 그룹 리밸런싱(사업 재편) 작업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검토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그룹의 투자 속도 조절 방침과 달리 투자 확대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2028년까지 향후 5년간 총 103조원을 투자하고, 이 중 82조원은 HBM 등 AI 관련 사업 분야에 배정할 계획이다. 이로써 6세대 HBM(HBM4) 양산을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내년에 시작하는 등 시장 주도권을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HBM3(4세대)를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며 전 세계 HBM 시장에서 53%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현존 최고 사양으로 평가되는 HBM3E(5세대)도 가장 먼저 공급했다.
업계에선 HBM 시장을 둘러싼 패권 경쟁 심화로 공급 과잉을 우려하면서도 올해 HBM3E 납품 물량은 SK하이닉스가 독식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CEO)도 기자간담회에서 "AI에 특화한 초고속·고용량·저전력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SK하이닉스의 HBM은 올해 이미 완판, 내년에도 거의 완판됐다"고 밝힌 바 있다.
투자 확대에 이어 그룹 차원의 지원 사격도 기대될 만하다. SK그룹 최고의사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에 '반도체위원회'가 신설된다. 위원장에는 곽노정 CEO를 보임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 특정 사업을 위한 위원회가 신설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1박2일 '끝장토론'으로 진행된 경영전략회의에서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AI 관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며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AI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역량 확보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관련 전문가 영입을 위한 채용 공고를 내고 경력직 지원 요건으로 HBM 분야는 '4년 이상', 파운드리 공정 기술인 핀펫 분야는 '10년 이상'으로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그간 베이스 다이를 직접 제조해 왔으나 HBM4부터는 파운드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초미세 공정을 통해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면 성능 향상, 전력 효율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객 맞춤형 생산이 목표다. 파운드리 세계 1위사 TSMC와 손잡은 배경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대만 타이페이에서 TSMC와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베이스 다이 생산에 TSMC의 로직 선단 공정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HBM4 개발은 물론 어드밴스드 패키징(AVP) 기술 역량 강화에도 협력할 방침이다. 양사 협업 관련 내용은 오는 9월 국제 반도체 포럼 '세미콘 타이완'에서 소개될 가능성이 크다. 포럼이 TSMC의 본토인 대만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주선 SK하이닉스 AI 인프라 사장이 참석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젠슨 황 CEO도 포럼 연설자로 예정돼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협업 강화 논의도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실린다.
CWN 소미연 기자
pink2542@cwn.kr
[저작권자ⓒ CWN(CHANGE WITH NEWS).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