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시작되었기에, 평화 역시 사람의 마음속에 성을 쌓아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평화를 국가 간 조약이나 정치적 선언만으로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일깨운다. 평화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의 신뢰와 이해로부터 비롯된다. 이 ‘마음의 평화’를 어떻게 우리 사회 안에서 구현할 것인가는 오래된 과제다.
우리는 흔히 남북통일을 외교와 안보의 문제로 인식하지만, 정작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우리 안의 통합 역량에서 비롯된다. 통일은 제도의 통합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문화적 통합’의 과정이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새로운 갈등과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다양한 분열과 갈등의 축 위에 서 있다. 이념, 세대, 지역, 계층, 문화의 차이는 종종 혐오와 배제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남북이 만났을 때의 충격을 더욱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통일은 결국 이질적인 존재가 공존하는 일이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을 견디는 사회’, 다시 말해 갈등을 조절하고 포용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이다.
이를 위한 핵심 도구가 바로 ‘사회적 대화’다. 사회적 대화는 모든 의견을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가 공존하고 토론과 숙의를 통해 공감과 합의의 지대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이 대화는 일상의 공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학교, 직장, 지역사회, 종교 공동체에서 서로 다른 관점을 듣고 이해하며, 사회적 신뢰를 복원해가는 훈련이 바로 통일 준비의 시작이다.
이러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통일부와 시민사회, 종교계가 지난 몇 년간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대화를 시도해 왔다.
2019년부터 추진된 ‘통일국민협약’ 도출을 위한 권역별 사회적 대화는 시민들이 직접 통일 의제를 숙의하고, 지역과 세대 간 차이를 조율하는 실험적 공간이었다. 청년세대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되며, 미래 세대의 평화 감수성과 통일 인식을 넓히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또한, ‘통일비전 시민회의’와 같은 공론화 기반의 대화 모델은 통일이 정부 주도의 정책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공통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통일을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로, 정치가 아니라 공동체의 과제로 자리매김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대화는 제도화되지 못하고 일회성에 그친 경우가 많았으며, 그 결과가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경로도 부족했다. 앞으로는 이러한 숙의 기반이 일상 속에서 지속 가능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상설적 대화 인프라, 미디어와 교육 시스템을 통한 공감 문화 확산이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국민통합위원회, 갈등관리 제도, 시민사회 참여형 대화 플랫폼은 통합을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통합은 제도가 아니라 문화다. 진정한 사회통합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 용서와 이해, 화해와 공감에서 비롯된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평화협정과 비핵화 논의 이전에, 신뢰를 회복하고 마음의 벽을 허무는 관계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는 단선적인 정치 합의가 아니다. 자기 자신 안의 평화, 사람 사이의 평화, 인간과 자연과의 평화, 나아가 초월적 존재와의 평화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통일과 공동체라는 이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계를 짓는 정치가 아니라 벽을 허무는 대화다. 남북 간의 벽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이념의 벽, 세대의 벽, 지역의 벽, 계층의 벽,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 벽을 넘어설 때, 우리는 진정한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
▲ |
[저작권자ⓒ CWN(CHANGE WITH NEWS).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