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포비아'로 캐즘 장기화 우려, 불신론 해소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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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주차장 내 충전소에서 전기차량이 충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CWN 소미연 기자] 국내 배터리 3사가 새 국면을 맞았다.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잇따르면서 국내 시장 재편 가능성이 열렸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배터리의 안전성 검증에 의문이 커지고 있는 만큼 국산 배터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요구하는 소비자와 시장의 목적은 '알 권리'에 대한 보장인 동시에 원산지 구별이다.
새 국면을 맞은 것은 완성차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그간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종류를 설명해 왔지만 제조사를 공개하진 않았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에서다. 배터리사에는 '비밀유지조항'으로 입단속을 했다. 때문에 배터리사들도 공급 계약을 독자적을 밝힌 바 없다. 고객사(완성차 업체) 동의 내지는 양사 합의가 있을 때에만 공급 사실을 공개했다. 이번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이례적으로 평가되는 배경이다.
가장 먼저 공개에 나선 곳은 현대자동차다. 지난 9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전기차 13종(제네시스 3종 포함)에 탑재하는 배터리 제조사를 밝혔다. 공개한 제조사 목록에 따르면 소형 SUV '코나 일렉트릭' 2세대에만 중국 CATL 배터리를 탑재하고, 나머지 12종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배터리를 사용했다. 같은 그룹 계열사인 기아차도 사흘 뒤 홈페이지에 니로 EV·레이 EV를 제외한 5종이 모두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배터리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제외된 2종은 CATL 배터리가 탑재됐다.
국내 완성차 시장 점유율 1위사에 이어 수입차 판매량 1위사도 배터리 제조사 공개에 동참했다. BMW 코리아가 지난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차 10종 가운데 8종이 삼성SDI 배터리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나머지 SUV iX1·SUV iX3 등 2종에 사용된 배터리는 CATL의 제품이었다.
결국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도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결정했다. '공급망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지만 책임론이 거셌다. 배터리 제조사 공개 발단이 된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건의 차량이 벤츠 EQE 350 모델이다. 당초 화재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가 CATL 제품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국내에서 생소한 파라시스 제품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었다. 파라시스 역시 중국 제조사로 글로벌 10위권 수준이다. 화재 발생 가능성으로 2021년 자국에서 3만여대가 리콜된 전력이 있다.
벤츠가 13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배터리 제조사 목록을 보면 화재 발생 차량 모델뿐 아니라 EQE 350+, EQE 53, EQE 350, EQE 500, EQS 350 등 모두 5종에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됐다. 최상위 모델인 마이바흐 EQS 680 SUV를 포함해 8종은 CATL 배터리가 장착됐다. EQC 400, EQB 300 등 2종에만 각각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배터리가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EQA 250 모델은 연식에 따라 CATL과 SK온 배터리가 들어갔다.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제조사 공개는 순차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는 13일 국내 모든 전기차를 대상으로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권고했다. 이른바 '배터리 실명제' 도입도 검토된다. 전기차 포비아 확산을 막고, 시대적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다. 이미 유럽은 2026년부터 배터리 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미국 일부 주(州)에서도 의무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높은 기술력에도 가격 경쟁력에서 고전했던 국내 배터리 3사에겐 기회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배터리 제조사 공개 자체가 안전성 문제를 부각시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건의 원인 규명이 안 된 상태에서 '배터리 불신론'만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토로다. 더욱이 전기차에 대한 신뢰 하락은 산업 전반의 침체로 이어지고, 캐즘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다. 중국 경쟁사와 차별화된 기술력을 선보일 기회이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처지인 셈이다.
CWN 소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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