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WN 손태한 인턴기자] 기자는 초등학교 졸업 시절부터 농구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기억하기로는 첫 동계 전지훈련을 간 첫날 밤이었다. 아버지가 간경화라는 병을 진단받았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아버지의 병세를 전화로 접했을 당시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후 아버지가 병원에서 간경화를 치료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봤다. 결국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간 이식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물론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하지만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자는 고집을 부렸고 부모님도 어쩔 수 없이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이후 간이식 수술이 가능한 나이인 17살이 되어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조직 검사후 다행히 잘 맞아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운동을 그만둬서 어떡하지', '무섭다'라는 생각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당시 아버지를 위한 간 이식 수술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내와 끈기를 기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기자 이야기가 지역신문에 게재됐다. 많은 기자들이 소식을 듣고 기자를 찾아왔고 인터뷰를 하게 됐다.
아버지 간 이식 후 운동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기자는 '앞으로 뭘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진로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기자들이 나를 찾아와 열정적으로 질문을 하는 모습과, 기사를 통해 공감을 얻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방면으로 기자란 직업을 알아봤다. 너무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평소 주변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던 기자는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힘들고 아픈 부분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어 우리 사회의 힘들고 아픈 부분을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이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를 천직으로 삼은 시발점이 된 계기다.
기자로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면서 분명 힘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간이식 수술 때의 힘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지금 당장 이 일보다도 힘든 일을 겪었는데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정도를 걷는 기자가 될 것이다.
CWN 손태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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