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업1부 소미연 기자 |
[CWN 소미연 기자] 한때 경기도 모 아동복지시설에 자원봉사를 다니면서 겪었던 일이다. 당시 8세 미만의 아이들을 돌보던 기자는 우연찮게 한 여고생의 안내로 여학생들이 지내는 방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 여고생은 자신의 드로잉 습작을 보여주며 선생님께 얼마나 많은 칭찬을 받았는지, 그림을 그리는 내내 얼마나 행복했는지 조곤조곤 설명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들뜬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기자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곤 물었다. "대학 진학은 미대로 정한 거야?"
돌아온 답변은 기대와 어긋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시설에서 퇴소해야 하기 때문에 미용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시급해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다는 얘기였다. 단순히 진학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육시설에서 성장한 다수의 아이들은 만 18세에 사회로 떠밀리듯 독립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됐다. 인생의 목표도 잃었다. 경제적 지원 없인 재능도 비전도 무용지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마주한 보육시설 아동들의 현실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때의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잊을까. 국회를 출입하면서 아동 전문가 출신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만났고,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실을 오가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현실을 반영한 지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본인이 원할 경우 만 24세까지 보호기간을 연장 가능하게 해 '보호종료아동'에서 '자립준비청년'으로 명칭이 바뀐 점, 자립정착금 및 자립수당이 단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실효성은 따져봐야 할 문제다.
정부는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자립준비청년의 수가 매년 2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실업률은 일반 청년의 2배로 조사됐다. 게다가 평균소득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빈곤은 부채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여당은 자립준비청년의 24%가 부채를 갖고 있다며, 50%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답변을 했다고 발표했다. 실제 알려지지 않은 죽음도 많다. 그만큼 사후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회적 고립은 또 다른 문제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자립준비청년들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지금도 세수 위기에 나랏빚까지 늘어나 비상이다. 그래서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복지 사각지대 지원은 정부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에 만난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희망디딤돌'을 언급하며 "자립준비청년들의 보금자리가 전국적으로 더 촘촘해지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내외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임직원들의 마음이 한데 모였다.
삼성희망디딤돌은 2013년 '삼성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맞아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기부한 금액으로 시작된 CSR 활동이다. 임직원 기부금 250억원에 회사도 지원금 250억원을 더했다. 이를 토대로 자립준비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센터를 차례로 짓기 시작했다. 지난달 11번째 대전센터 개소식을 열었고, 오는 10월에는 충북센터 개소를 앞뒀다. 지난해까지 2만7065명이 지원을 받았다.
센터는 주거 외에도 요리, 청소와 같은 일상 생활에 필요한 지식에서부터 금융·자산관리 등 기초적인 경제교육과 진로상담, 취업알선까지 지원한다. 교육 중심의 사회공헌 사업으로 확대된 셈. 이른바 '삼성희망디딤돌 2.0' 사업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함께일하는재단 등과 머리를 맞댔다. 여기에 임직원들도 손을 보탰다. 직접 멘토로 참여하는 재능 기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창구가 생긴 것이다.
삼성 임직원들은 매년 회사에서 운영하는 CSR 사업 중 본인이 원하는 기부처를 선택해 기부를 약정할 수 있다. 가장 많은 금액이 몰린 사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삼성희망디딤돌이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립준비청년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데 내부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센터 추가 개소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오는 10월 예정된 충북센터 개소식에는 직접 현장에 참석해 함께 박수치고 싶다.
CWN 소미연 기자
pink2542@cwn.kr
[저작권자ⓒ CWN(CHANGE WITH NEWS).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