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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배경이 되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연관된다.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도록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는 게 중요했는데,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동원돼 분식회계가 벌어진 것으로 의심을 샀다. 사진=뉴시스 |
[CWN 소미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오는 9월 본격화된다. 재판부는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을 거쳐 내달 30일 첫 정식 공판을 열기로 했다. 이후 11월 25일 변론 종결까지 총 5번의 공판을 진행한 뒤 내년 1월 선고한다는 게 재판부의 구상이다. 1심 대비 빨라진 속도로 재판이 전개되면서 이 회장과 검찰 측의 공방도 더욱 치열해졌다. 원심의 무죄 판결에 불복한 검찰이 제출한 항소이유서 분량만 1300쪽 이상이다. 판결 뒤집기를 노리는 검찰과 이에 맞선 이 회장의 방어전이 향후 관심사다.
새 변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가 금융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 결과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결정한 80억원 과징금 등 재제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지난 14일 "삼성바이오가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을 지분법 처리하면서 가치를 부당하게 부풀렸다는 금융당국의 처분 사유는 인정되지만, 인정되지 않는 처분 사유들도 함께 존재한다는 점에서 재제는 전부 취소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유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 목적이 삼성바이오의 '자본잠식' 회피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결정하고, 그 반영 시점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일(2015년 9월1일) 이후로 정했다는 점에서다. 이 같은 선(先)결론, 후(後)처리는 "원칙중심 회계기준 아래에서 주어진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회계처리가 잘못됐다는 증선위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다. 에피스에 대한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의 공동지배를 합작투자계약 자체만으로 인정한다거나,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실질적 권리로 보고 지배력 판단에 반영해야 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이 회장에게 무죄를 판결한 1심 재판부의 판단과 사뭇 다르다. 삼성바이오 회계처리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한 분식회계가 있었다는 점을 일정 부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분식회계가 인정되면 관여 혐의를 받는 이 회장의 반론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합병 명분부터 절차상에 고의가 없다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소송을 통해 금융당국의 제재 취소를 이끌어낸 삼성바이오가 입장 표명에 신중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바이오는 삼성물산의 자회사다. 2011년 출범 당시 제일모직의 자회사였지만, 2015년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면서 모회사가 바뀌었다. 합병 수혜자는 이 회장으로 해석된다.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 회장이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의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동시에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합병 이후 삼성물산은 사실상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삼성바이오가 합병을 앞둔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분식회계를 벌인 게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대 0.35였다.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이다.
분식회계의 핵심은 에피스다. 에피스는 삼성바이오가 2012년 미국 제약기업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종속회사로, 2015년 관계회사로 전환됐다. 전환 당시 지분가치가 장부가액(2900억원)에서 시장가액(4조8000억원)으로 뛰었다.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을 반영한 결과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었다. 콜옵션에 관한 공시는 2014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통해 처음 밝혔고, 제일모직과 삼성바이오가 합병한 이후 회계처리를 재조정했다. 회계상 금융부채에 해당하는 콜옵션을 포함해 가치를 평가하면 자본잠식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실제 삼성바이오는 설립 이후 줄곧 적자에 허덕였다.
증선위의 고발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2020년 9월 이 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당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을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며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기소 3년 5개월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부분은 다시 항소심에서 다투게 될 전망이다. 검찰의 요청에 따라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의혹보다 먼저 다루기로 했다. 1심에서 합병의 부당함을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분식회계 입증에 주력해 유죄 판단을 이끌어 내겠다는 게 검찰의 전략이다.
따라서 삼성바이오의 행정소송 결과는 항소심을 앞둔 이 회장과 검찰에게 중요한 단서가 된다. 셈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행정법원의 결정(제재 취소)과 판단(비정상적 회계처리)을 두고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분식회계의 고의성 여부에 대한 해석도 차이가 생긴다. 이 회장으로선 고의 혐의가 불성립돼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의 근본 목적이 경영권 불법승계라는 검찰의 논리를 깰 수 있다.
CWN 소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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