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0명. 매일 이만큼의 이웃이 우리 곁을 떠납니다. 2003년 이후 대한민국은 20년 넘게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했습니다. 2024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6명, 남성은 40.20명, 여성은 16.89명으로 오히려 상승했습니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이라는 자부심 뒤에, 우리는 ‘자살공화국’이라는 이름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인은 복잡하지만 뿌리는 분명합니다. 물질만능주의, 치열한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그리고 공동체 규범의 붕괴입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은 삶을 윤택하게 했지만, 동시에 관계를 단절시키고 신뢰의 끈을 끊어 놓았습니다. 사회학자 뒤르켐이 말한 ‘아노미’—규범이 사라진 상태—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저와 종교인들은 2019년, 자살예방에 소홀했던 것을 참회하며 새로운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더뎠습니다. 지난 7월 30일, 제주 법화사에서 7대 종단 종교인 1,000명이 ‘생명 살리기 자살예방 천인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선언만으로는 생명을 구할 수 없습니다. 행동이 뒷받침돼야 하고, 행동에는 예산과 구조가 필요합니다.
현실은 냉혹합니다. 일본의 자살대책 위원회 예산은 8,500억 원이지만, 우리나라는 600억 원 수준입니다. 최소 5,000억 원 이상으로 증액해 지자체·종교·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대책을 실행해야 합니다. 자살예방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국가 존속과 인구 안보를 위한 전략입니다.
지난 8월 5일, 우리는 프레스센터에서 ‘자살대책 위원회법 제정’ 정책토론회를 열고 대통령실에 제안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 위원회를 설치하라는 것입니다.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서는 총괄 컨트롤타워 없이는 매일 반복되는 죽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특히 65세 이상 어르신 자살률이 청장년층보다 높은 현실은 심각합니다. 경제적 곤궁, 병고, 외로움이 원인입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생명돌봄 사랑방’을 운영하고, 고독사와 극단적 선택을 막아야 합니다. 종교계도 코로나 이후 신자 감소와 재정난 속에서도 ‘정교동심(政敎同心)’으로 이 일에 나서야 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베버리지 보고서가 제시한 이 구호는 국가가 국민의 전 생애를 책임져야 한다는 복지국가의 이상을 상징합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출산율을 높일 수 없고, 미래를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사람이 곧 국력입니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국가 자강력의 뿌리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자살대책 위원회가 출구전략입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방관하는 것은 자살에 동조하는 사회적 타살입니다. 종교인으로서, 한 국민으로서, 저는 이 현실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오늘도 목소리를 냅니다.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입니다. 생명이 존중되는 대한민국, 그것이 우리가 반드시 열어야 할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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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인연대(URI-K) 상임대표
한국생명운동연대 공동대표
생명존중 시민회의 상임대표
원불교 다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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