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보조금 폐지-'칩스법' 불확실성에 속 타는 반도체-자동차-배터리업계
美 관세 인상땐 수출 최대 63조 감소..내년 경제성장률 2% 초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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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편집국장 |
'스트롱맨 트럼프의 귀환'. 트럼프 2기 정부 정책이 불러 올 세계질서 변화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의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다.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서 저물가, 저금리, 관세를 통한 보호무역주의, 제조업 부흥,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 약달러 등을 내세웠다.
미국을 제조업의 국가로 변신시킬 것이고 수출을 증대시켜 강력한 고용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포석이다.
트럼프 2기는 '매파' 인사들로 가득 채워진 내각과 구체적이고 선명한 정책이 예정됐다는 점에서 더욱 막강해졌다. 설상가상 미국 의회마저 공화당이 사실상 장악해 트럼프의 일방적 독주를 막을 제동장치도 사라졌다.
내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금리를 낮추고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관세를 올리고, 기업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등 좌충우돌하는 경제정책들을 몰아붙일 것이다.
당장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대장주 삼성전자가 '4만전자'로 내려앉는 등 지난주 국내 증시가 패닉상태에 빠졌고, 트럼프발(發) 강달러 여파로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단숨에 넘어서 버렸다.
미국에 70조원 가량을 투자한 우리 기업들도 당장 생존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반도체·배터리 업체들은 미국이 보조금을 약속해 미국에 공장을 지었는데, 트럼프는 미국 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공장을 짓는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위원회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을 폐기하기로 했다. 전기차 대당 7500달러(약 1054만원)까지 지급하는 관련 보조금을 없앤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기차 캐즘(일시적 단절)으로 어려움을 겪는 배터리업계의 고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 업계는 IRA보다 보편관세에 더 긴장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수출 중 미국 비중이 56%에 이르고,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445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보복관세 우려가 상존한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관세 10~20%를 물리고, 중국산에는 최고 60% 고율 관세를 공언했다.
중국과 미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미·중 간 관세 전쟁이 벌어지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도 연쇄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한국에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액은 304억달러(약 42조원), 총 수출액은 448억달러(약 63조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해 한국 수출액(6322억2600만달러)의 8%가 줄어드는 것이다.
문제는 베트남과 멕시코, 인도 등 신흥국을 대상으로 관세 전쟁이 확전할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은 IT(정보기술) 부문을 중심으로 한국산 중간재를 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산업 구조가 자리 잡아 한국 기업에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트럼프의 재선으로 '관세 전쟁'이 세계로 확산하면 한국 경제성장률이 크게는 1.1%p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경제성장률이 2%대 초반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설상가상 트럼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요구하거나 주한미군 방위비의 추가 부담 압력에 대한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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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4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
트럼프 시대에 맞게 국익을 극대화할 길을 찾아야 한다. 대외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에게 ‘개별 기업의 투자가 미국 지역 경제, 일자리 창출 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상세하게 홍보해 한국의 대미 투자에 관한 우호 여론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미국 배터리 생산 기지는 미국 미시간, 테네시, 켄터키주 등에 있다.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지역으로, 현지 공화당 정치인들도 IRA 폐기 시 부작용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배제한 채 자국 제조업 부활을 추진하겠다는 트럼프 정부로선 반도체, 배터리, 태양광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전통의 조선·기계·전력 산업에 이르는 풍부한 산업 공급망을 확보한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도 중요해졌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트럼프 2.0 시대가 불러일으킬 ‘나비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민한 대처가 중요하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피해 최소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수출 환경 악화 가능성이 큰 만큼 내수가 이를 만회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어 국내 경기 침체와 성장률 저하 우려 등 경제 위기 대책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고환율이 지속되면 수입물가가 상승해 최근 안정 추세를 보였던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정부는 시장 상황별로 맞춤형 대응 계획을 세심하게 준비해,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출 시장 다변화와 함께 미래성장동력산업 육성·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더 가속화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과 산업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 트럼프발(發) 위기를 새로운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 기업이 힘을 모아 초당적으로 대비하고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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