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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빌리티팀 윤여찬 팀장 |
둘 다 틀렸다. 전자장치가 잔뜩 달린 최신 자동차만 급발진 논란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연식이나 차값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연령별로 봤을 때도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50대 이하가 더 많았다는 통계도 나왔다.
결국 해외 사례로 눈을 돌려봐야 한다. 급발진 사고로 인정받은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전무하다. 토요타가 지난 2012년 미국에서 급발진 의심으로 900만대 리콜을 했지만 운전석 바닥 매트 문제로 결론이 났다. 매트가 고정되지 못하고 악셀 페달을 누르게 됐다는 수준에서 사건은 종료됐다.
이와 별개로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난달 28일 급발진에 대처하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PMSA)를 의무 장착하기로 발표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데 전방에 장애물이 있으면 급격한 페달 조작시 전기 모터나 엔진의 동력을 자동으로 끊는다. 큰 뉴스가 되지 않은 이유는 일본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자국 내 차량에 대해 이 장치를 달기 시작해 90% 이상의 모델에 적용돼 있기 때문이다. 때를 함께 해 현대자동차는 처음으로 '캐스퍼 일렉트릭'에 이 장치를 달고 이달 말 차량 인도를 시작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페달 블랙박스' 의무 장착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지난 9일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가 입법 발의돼 관심을 끌고 있다. 다음 날인 10일엔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제 차에도 페달 블랙박스를 달겠다"면서도 "제조사에 강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해 권고 방침을 예상케 했다.
11일 온라인에서는 '페달 블랙박스'를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운전자 개인이 페달 블랙박스를 구매해서 설치하고 있는데 이건 자동차 메이커의 몫이 아니냐는 여론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시 운전자가 급발진이라는 걸 입증해야 하는 국내 법규상 유일한 방법은 페달 블랙박스 밖에 없지 않냐는 반응이다. 실제 온라인 쇼핑몰에선 일명 '사제' 페달 블랙박스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서울시청앞 인도 돌진 사고로 9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지 열흘이 지났다. 이 시점이 아니면 페달 블랙박스 제도화가 힘을 잃어갈 수 있다. 국회 입법 발의 내용을 보면 자동차 제조사의 블랙박스 개발 기간을 3년으로 잡아 시간적 여유도 줬다. 국산차와 달리 수입차의 경우는 별도의 해결책이 조금 더 요구된다. 적은 국내 물량만을 위해 해외 생산지에서 별도의 블랙박스를 달고 나오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국토부 장관이 언급한 '무역 마찰'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동차의 여러 장치 중 페달 블랙박스가 '글로벌 스탠다드'는 아니다. 국가별로 방향지시등의 색깔이 노란색이냐 빨간색이냐, 경차의 규격이 전장 3.6m냐 3.4m냐 등 조금씩 달라도 페달 블랙박스가 법제화된 국가는 없다. 그래서 급하게 진행하기 보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디테일하게 규정을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국내 판매 점유율 90%에 육박하는 현대차그룹 등 국산차에 우선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수입차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안이 흐지부지 사라져 폐기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따라야 하는 기준인 동시에 우리 나라가 선제적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는 사안이다. 높아진 국격과 기술경제 수준에서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급발진 의심사고는 갈수록 늘어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때마다 페달 블랙박스 도입 필요성이 대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페달 블랙박스가 자동차의 결함 여부를 잡아낸다는데 초점을 두기 보다 운전자가 자신의 실수를 급발진이라고 양심을 속이는 일이 없도록 걸러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소중한 목숨을 잃게 한 죗값을 제대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CWN 윤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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