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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부 김보람 기자 |
끝없이 이어진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력이 필요했다.
진시황은 일꾼들이 마실 물을 담을 항아리를 만들 것을 지시했는데 그 항아리가 얼마나 컸는지 군사 10만명이 황하물을 퍼다 담고 아무리 마셔도 줄지 않아 하수분(河水盆, 강물을 담은 항아리)이라고 불렸다는 설화다.
하수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화수분이란 말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쓰인다. 특히 한정적인 자원과 재화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와 관련해서는 대체로 그랬다.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정부가 전국민 지원금을 주려 했을 때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권에 기댄 금융감독원의 감독 실패 매뉴얼 '일단 수습해'가 또다시 가동됐다.
티몬·위메프(티메프) 정산 대금 미지급 사태에 대해 금융권 전방위적 책임 전가에 나서면서다.
우선 카드사·전자결재대행(PG사) 업계에는 소비자 환불 처리를 지시했다.
환불 절차는 카드사가 먼저 소비자에 취소 대금을 돌려주고 카드사는 PG사에게 대금을, PG사는 티메프에 구상권을 청구해 받아야 한다.
문제는 티메프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티메프 사태 책임을 당장 PG사가 떠맡게된 셈이다. 이에 업계에선 줄도산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결제 취소 거절은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압박했다.
결국 카드사·PG사는 당국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달 6일까지 3만여건, 40억원 규모 소비자 환불 처리를 완료했다.
티메프 판매자에 선정산대출을 내준 은행권엔 판매자 지원책 마련을 주문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은행연합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25일까지 국민·신한·SC제일은행이 티몬·티몬월드·위메프와 관련해 신규 취급한 선정산대출은 약 3855억원이다.
SC제일은행(3649억원)이 가장 많고 KB국민은행 203억원, 신한은행은 약 3억원 정도다.
이에 SC제일은행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은 판매대금 정산 지연으로 인해 자금 경색이 발생한 소상공인을 위해 선정산대출 기한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이자율 인하 등의 지원 방안을 내놨다.
금감원은 2년 전 티메프가 자본 잠식에 빠졌을 때 경영개선 협약(MOU)을 맺었다. 미상환·미정산 잔액에 대한 보호 의무도 부과했다.
이미 2년 전부터 티메프 미상환·미정산 위험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티메프 사태에 대해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유 막론하고 국민께 부담드리고 걱정 끼쳐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관리·감독 실패 책임은 미루고 금융권 압박을 통한 '일단 수습해' 식 사태 처리는 무능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다.
이번 티메프 사태를 통해 감독 강화 방안도 마련해야겠지만 책임을 전가해 사태 수습에 나서려는 행태도 뜯어고쳐야 한다.
은행은 물론 보험사도 카드사도 돈을 찍어내는 화수분이 아니다.
CWN 김보람 기자
qhfka7187@cw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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