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일본 사도광산 등재에 밀실 합의
한일협력에만 방점 찍은 '대일 저자세 외교'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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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진 정치경제국장 |
에도시대(16-18세기) 금광으로, 1940년대 태평양전쟁 때는 전쟁물자를 확보하는 시설로 활용됐던 사도광산은 2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가혹한 노역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간 곳이다. 2019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사도광산에서는 최소 1200명 가량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도 지난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군함도)’ 등을 유네스코에 등재할 당시 사토 구니 당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의 말을 통해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는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유산의 ‘전체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지적에 따른 것으로, 일본은 조선인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함께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 이행은커녕 도리어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참여였다며 왜곡에 나섰다. 전시장(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도 현장이 아닌 도쿄에 마련됐고, 전시 내용도 조선인 강제노역과 민족차별을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들만을 내놨다.
2021년 7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에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했지만, 이를 철저히 무시했고, 더 나아가 사도광산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사도광산이 일본 고유의 전통적 수공업을 활용한 산업유산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주장하며 센고쿠시대(1467~1590년)와 에도시대(1603~1867년)만을 한정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 군함도 등재 때와 똑같은 길을 노렸다. 사도광산이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산업현장임을 알고 있었기에 한국 등 관계국의 반대를 피하려는 의도였다.
이런 상황인데도 윤석열정부는 우리 민족의 피와 한이 서려 있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버젓이 등재될 수 있도록 오히려 눈감아줬다. 지난달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가 사도광산 신규 등재 안건을 다루기 직전, 한일 간 밀실 협상을 통해 사도광산 인근에 조선인 동원 역사를 드러내는 전시실을 마련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약속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도 역시나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이 명시되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우리 정부가 내놓은 해명이 더 기가 찬다. ‘구체적인 표현이 없더라도 전시 내용을 통해 강제 노역에 관한 역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전시에 '조선총독부의 관여하에 모집·알선이 이뤄졌다', '1944년 9월부터 징용이 시행돼 의무적으로 작업이 부여됐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갱내 위험한 작업을 더 많이 했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세계유산 등재전 사도광산 인근에 전시실을 여는 등 선조치를 했다며 일본정부를 두둔했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등재 사흘 전인 지난달 27일, 국회가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철회 및 일본 근대산업시설 유네스코 권고 이행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도 윤석열정부는 이를 묵살했다. 아무리 여소야대 국회라지만, 진영 논리로 보기엔 여야 간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역사관의 괴리가 너무나 큰 게 아닌가.
그동안 윤석열정부와 집권여당이 보여준 대일정책은 국민 정서와 역사 인식과도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강제징용 배상금 제3자 변제, 위안부 피해자 승소판결 이행 거부, 라인 사태, 조선인 강제동원 추도비 철거,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일본의 도를 넘는 행태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취임 이후부터 내내 이어지고 있는 윤석열정부의 대일 저자세외교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도광산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올해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대일관계는 한반도 평화와 미래를 위한 협력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몰염치한 과거사 지우기에도 무조건 한일협력이 최고선이라는 윤석열정부의 인식은 과연 타당한가? 무엇보다 이번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관련 한일 간 합의에 당사자인 생존 피해자와 유족들의 의사는 반영했는지 묻고 싶다.
일본 언론들조차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한일 갈등에 일본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인정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0일 칼럼에서 “일본 측이 처음부터 한반도 출신자의 고난의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했다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복잡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국가의 독점물도, 빛으로만 채색된 것도 아니다”라며 “그늘진 부분도 포함해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유산 가치를 높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먼저 이뤄졌을 때 가능하다.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지배는 불법이 아니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는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에 따른 합법적 조치이며, 식민지배와 관련된 모든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됐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행태를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CWN 주진 기자
jj72@cw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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